그러나 나는 그 같은 파렴치한 약탈조차 일제가 우리의 정신과 의식에 남긴 것에 비한다면 지극히 경미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. 한 민족의 정신과 문화의 말살, 역사의 단절, 그리고 그 자리에 그들 자신의 문화의 가장 저급한 측면들을 이식한 것에 비하면 설령 이 땅의 모든 문화재를 빼앗겼더라도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.
그러나 진짜 비극은 다른 데 있었다. 35년간의 식민지배가 끝나고 그 두 배 가까운 7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가 여전히 그 병영문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더 큰 비극이 있었다. 일본도와 군화를 숭상하는 무리들이 이 나라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면서 국민들은 복창과 호각소리에 맞춰 잠을 깼고, 단색의 유니폼을 입어야 했으며, 열과 오를 맞춰 사고하고 행동해야 했다. 그건 전 국민의 사병화, 복종의 내면화, 사회의 단색화였다. 일제에 의한 조선의 병영화는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 비로소 완성되었다.
태안의 해수욕장에서 벌어진 참사를 보면서 들었던 가장 큰 의문이 '왜 학생들에게 병영체험이 필요했을까'였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. 학교 자체가 병영인데 도대체 왜 병영체험을 해야 했느냐는 것이었다. 소년들의 죽음은 일제하 황국의 신민을 만들 듯 학생들을 소년병으로 만들려 한 '일제 순사의 후예'들에 의한 희생이었다.
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@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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